2011. 9. 14. 13:29ㆍ아름다운 삶/2.국내현장체험
도산서원 추계향사
2010년 9월 24일 秋 季 享 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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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陶山書院
退溪 李滉 1501~1570
도산서원 享祀
향사초청 回文
2010~ 도산서원 秋享 獻官執事錄
도산서원 주요건물
도산서당 [陶山書堂] |
MBC방송 도산서원 2009년도 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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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李滉) 퇴계(退溪)선생은 매화(梅花)를 끔직히도 사랑했다.
그래서 매화를 노래한 시가 1백수가 넘는다.이렇게 놀랄 만큼 큰 집념으로
매화를 사랑한데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단양군수 시절에 만났던 관기(官妓) 두향(杜香) 때문이었다.
퇴계 선생이 단양군수로 부임한 것은 48세 때였다. 그리고 두향의 나이는
18세였다. 두향은 첫눈에 퇴계 선생에게 반했지만 처신이 풀 먹인 안동포
처럼 빳빳했던 퇴계선생이었던 지라, 한동안은 두향의 애간장을 녹였다.
그러나 당시 부인과 아들을 잇달아 잃었던 퇴계 선생은 그 빈 가슴에 한
떨기 雪中梅 같았던 두향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두향은 詩와 書
와 가야금에 능했고 특히 매화를 좋아했다.
두 사람의 깊은 사랑은...... 겨우 9개월 만에 끝나게 되었다.
퇴계 선생이 경상도 풍기 군수로 옮겨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두향으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변고였다. 짧은 인연 뒤에
찾아온 갑작스런 이별은 두향이 에겐 견딜 수 없는 충격이었다.
이별을 앞둔 마지막 날 밤, 밤은 깊었으나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내일이면 떠난다.기약이 없으니 두려움 뿐이다.』 두향이가 말없이
먹을 갈고 붓을 들었다. 그리고는 시 한 수를 썼다.
이별이 하도 설워 잔 들고 슬피 울때
어느덧 술 다 하고 님 마져 가는구나
꽃 지고 새 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이날 밤의 이별은 결국 너무나 긴 이별로 이어졌다. 두 사람은 1570년
퇴계 선생이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21년 동안 한 번도 만
나지 않았다.
퇴계 선생이 단양을 떠날 때 그의 짐 속엔 두향이가 준 수석 2개와 매화
화분 하나가 있었다. 이때부터 퇴계 선생은 평생을 이 매화를 가까이
두고 사랑을 쏟았다. 퇴계 선생은 두향을 가까이 하지 않았지만 매화
를 두향을 보듯 애지중지했다.
선생이 나이가 들어 모습이 초췌해지자 매화에게 그 모습을 보일 수
퇴계 선생을 떠나보낸 뒤 두향은 간곡한 청으로 관기에서 빠져나와 퇴계
선생과자주 갔었던 남한강가에 움막을 치고 평생 선생을 그리며 살았다.
퇴계 선생은 그 뒤 부제학, 공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역임했고 말년엔 안
동에 은거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 퇴계 선생의 마지막 한 마디는
『매화에 물을 주어라.』선생의 그 말속에는 선생의 가슴에도 두향이가
가득했다는 증거였다.! !
前身應是明月 幾生修到梅花
내 전생은 밝은 달이었지. 몇 생애나 닦아야 매화가 될까
퇴계 선생의 시 한 편이다.
.
퇴계 선생의 부음을 들은 두향은 4일간을 걸어서 안동을 찾았다.
한 사람이 죽어서야 두 사람은 만날 수 있었다. 다시 단양으로 돌아온
두향은 결국 남한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두향의 사랑은 한 사람을 향한 지극히 절박하고 준엄한 사랑이었다.
그 때 두향이가 퇴계 선생에게 주었던 매화는 그 代를 잇고 이어 지
금 안동의 도산서원 입구에 그대로 피고 있다.
언제 도산서원에 가서 매화를 볼 기회가 있으면, 두향의 사랑을 생각하고
한 번 유심히 바라볼 일이다
도산서원 매화
깊어가는 이 가을의. .. 님 ! 매화처럼 아름다운 추억 하나 만들어 보지 않으실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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