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8. 13. 15:13ㆍ아름다운 삶/1.초하룻글
3월
雪 中 梅 설 중 매
3월~ 눈속에서 피어나는 梅花꽃 봄 내음을
사랑하며 미워하는 미워하며 ~ ~ 사랑하는 그 사람 속 어디
가만히 쏟아 부어 보시옵소서
삼월 초하룻날 허암-홍윤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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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꽃 매화
장미과의 낙엽 소교목, 높이는 5미터 정도이며,녹색,흰색,붉은색 따위의 꽃이 핀다
꽃을 매화(梅花)라고 하며 열매를 매실(梅實)이라고 한다.
특히 눈속에서 꽃을 피운 매화를 설중매(雪中梅)라 한다
만물이 추위에 떨고 있을 때, 꽃을 피워 봄을 먼저 알려주므로서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선비정신의 표상으로 삼았고, 또한 사랑을 상징하는 꽃 중에서
으뜸이며, 시나 그림의 소재로도 많이 등장한다.
꽃은 3월에 잎보다 먼저 피고 향기가 난다.
열매는 공 모양의 핵과로 녹색이며 신맛이 강하다.
꽃말은 "고결한 마음" 이다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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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온 천하가 풍설에 덮여 있는 겨울의 끝머리에 먼저 봄소식을 알려주는 꽃이 매화이다.
매화는 머지 않아 봄이 올 것을 알리는 전령인 것이다.
다 썩은 듯한 고목에서도 봄이 가까우면 어김없이 꽃을 피워 은근하고 부드러운 미소로 봄의 등불을 켜준다.
음력 정월, 문간 대문에 써 붙이는 춘련(春聯)의 구절에서 보듯 매화가 몇 송이 피는 것은 봄을 알리는
전령 역할을 했다.
폭죽소리에 사람의 나이는 하나 더해 가고 爆竹二三聲人間改歲
매화 네댓 송이에 세상은 바야흐로 봄이로구나 梅花四五點天下皆春
꽃이 피어가는 순서를 춘서(春序)라고 한다. 당나라 백낙천(白樂天)의 〈춘풍(春風)〉이란 시는 이 춘서를
읊은 것이다.
봄기운에 정원 안의 매화가 가장 먼저 피어나고 春風先發苑中梅
뒤이어 앵두, 살구, 복숭아, 자두 꽃이 차례로 핀다 櫻杏桃李次第開
이와 같이 봄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매화는 봄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이 얼어붙어서 차가운 돌같이 딱딱한 엄동, 온갖 풀·나무가 모조리 눈을 감고 추위에 몸을 떨고
있을 즈음, 이 살을 저미는 듯한 한기를 무릅쓰고 피어나는 매화, 이는 실로 선구자적 성품과 상통한다.
압박과 겸제(箝制)의 고난을 이기고 해방과 자유의 그날을 고대하는 선각자의 형상과 흡사하다.
김진섭(金晋燮)은 그의 〈매화찬(梅花讚)〉에서 매화는 한때를 앞서는 선구자의 영혼에 피어나는 꽃이라고 하였다.
梅花에 관한 글
중국 송나라 시인 왕안석(王安石)
牆角數枝梅(장각수지매)
凌寒獨自開(능한독자개)
遙知不是雪(요지부시설)
爲有暗香來(위유암향래)
담 모퉁이의 매화 몇 가지
추위를 이기고 홀로 피었네.
멀리서도 눈이 아님을 알겠나니
은은한 향기가 풍겨오누나.
이 시는 추위를 이겨내고 피는 매화에 대해 읊고 있는데, 엄동설한 속에서도 은은한
향기를 뿜어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매화를 통하여 꺾일지언정 굴하지 않는 선비의
절개를 느끼게 한다.
평양기생 매화의 시
매화 옛 등걸에 봄졀이 도라오니
녯 퓌던 가지에 피엄즉도 하다마는
춘설(春雪)이 난분분(亂紛紛)하니 필동말동 하여라.
<해설>
초장의 '매화'는 작자 자신을 나타내는 말로, 노쇠한 자신을 표현한 '녯 등걸'과 함께
중의법을 사용하였다. 중장의 '피엄즉도 하다마는'은 지난 시절에 함께 했던 정든 임
이 올 듯 하다는 뜻이다.
그 임이 있기에 희망을 갖고 남은 여생을 보내려 하는데, '춘설'이라는 '어지러운
세상살이(늙어가는 삶에 대한 무상)' 때문에 자신의 사랑하는 임과 행복한 나날들이
찾아올 지 모르겠다는 안타까움을 나타내고 있다.
자신의 늙어 가는 처지를 새삼스럽게 돌아보면서, 삶에 대한 느낌을 읊은 노래이다.
退溪先生의 梅花 그리고 杜香
이황(李滉) 퇴계(退溪)선생은 매화(梅花)를 끔직히도 사랑했다.
그래서 매화를 노래한 시가 1백수가 넘는다.
이렇게 놀랄 만큼 큰 집념으로매화를 사랑한데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단양군수 시절에 만났던 관기(官妓) 두향(杜香) 때문이었다.
퇴계 선생이 단양군수로 부임한 것은 48세 때였다.
그리고 두향의 나이는 18세였다.
두향은 첫눈에 퇴계 선생에게 반했지만 처신이 풀 먹인 안동포 처럼 빳빳했던
퇴계선생이었던 지라, 한동안은 두향의 애간장을 녹였다.
그러나 당시 부인과 아들을 잇달아 잃었던 퇴계 선생은 그 빈 가슴에
한떨기 설중매(雪中梅) 같았던 두향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두향은 詩와 가야금에 능했고 특히 매화를 좋아했다 .
두 사람의 깊은 사랑은...... 겨우 9개월 만에 끝나게 되었다.
퇴계 선생이 경상도 풍기 군수로 옮겨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두향으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변고였다.
짧은 인연 뒤에 찾아온 갑작스런 이별은 두향이에겐 견딜 수 없는 충격이었다.
이별을 앞둔 마지막 날 밤.
매화분 꽃 그림자 등불에 흔들리는 밤ㅡ밤은 깊었으나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퇴계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일이면 떠난다.기약이 없으니 두려움 뿐이다.』
두향이가 말없이 먹을 갈고 붓을 들었다. 그리고는 시 한 수를 썼다
.
이별이 하도 설워 잔 들고 슬피 울때
어느덧 술 다 하고 님 마져 가는구나
꽃 지고 새 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이날 밤의 이별은 결국 너무나 긴 이별로 이어졌다.
두 사람은 1570년 퇴계 선생이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21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퇴계 선생이 단양을 떠날 때 그의 짐 속엔 두향이가 준 수석 2개와 매화분 하나가 있었다.
이때부터 퇴계 선생은 평생을 이 매화를 가까이 두고 사랑을 쏟았다.
퇴계 선생은 두향을 가까이 하지 않았지만 매화를 두향을 보듯 애지중지했다.
선생이 나이가 들어 모습이 초췌해지자 매화에게 그 모습을 보일 수 없다면서 매화분을
다른 방으로 옮기라고 했다.
.
퇴계 선생을 떠나보낸 뒤 두향은 간곡한 청으로 관기에서 빠져나와 퇴계선생과 자주 갔었던 남한강가에
움막을 치고 평생 선생을 그리며 살았다.
퇴계 선생은 그 뒤 부제학, 공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역임했고 말년엔 안동에 은거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 퇴계 선생의 마지막 한 마디는 이것이었다.
『매화에 물을 주어라.』
선생의 그 말속에는 선생의 가슴에도 두향이가 가득했다는 증거였다.
前身應是明月 幾生修到梅花
내 전생은 밝은 달이었지. 몇 생애나 닦아야 매화가 될까
퇴계 선생의 시 한 편이다.
퇴계 선생의 부음을 들은 두향은 4일간을 걸어서 안동을 찾았다.
한 사람이 죽어서야 두 사람은 만날 수 있었다.
다시 단양으로 돌아온 두향은 결국 남한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두향의 사랑은 한 사람을 향한 지극히 절박하고 준엄한 사랑이었다.
그 때 두향이가 퇴계 선생에게 주었던 매화는 그 代를 잇고 이어 지금 안동의 도산서원 입구에 그대로 피고 있다.
. 도산서원 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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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달 東賢의 敎訓 .
養德者는 不責人小過하며 不發人陰私하고 不念人舊惡하니라
기를양.덕덕.놈자-아닐불.꾸짖을책.사람인.작을소.지날과- 아닐불.쏠발.사람인.응달음.사사사-아닐불.생각할념.사람인.예구.악할악 양덕자는 불책인소과하며 불발인음사하고 불념인구악하니라
덕을 기르는 사람은 남의 작은 허물을 책망하지 않으며 남의 비밀을 말하지 않고 남의 지난날 잘못을 생각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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